

도시는 살아있는 생명체다. 사람들의 관계와 기억이 모여 하나의 유기체가 되고, 시간에 따라 얼굴을 바꾸고, 그 속을 살아가는 이들의 호흡과 감정이 담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도시는 점점 그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남은 것은 반복되는 구조와 욕망, 그리고 침묵뿐이다. 어디를 가도 닮은 듯한 회색 외벽과 정체모를 영어이름만 붙은 아파트 동들, 그리고 똑같이 복제된 조경 공간들이 이어진다. 골목마다 품었던 각기 다른 이야기들은 사라지고, 도시 곳곳은 분양가와 평면도에 맞춰 잘려진 틀 안에서 살아간다.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도시의 모든 구획은 복제 가능한 단지로 변해가고, 개성과 기억은 일률적인 건축물 뒤로 숨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곳에 살면서도 ‘어디에도 살지 않는’ 무장소성 속에 갇힌다.
공간은 사람을 닮는다. 닫힌 조경은 닫힌 마음을 낳는다. 우리는 어느새 인사조차 조심스러워지고, “여긴 입주민만 들어올 수 있는데요”라는 말이 입 밖에 떨어지기도 전에 발길을 돌린다. 그렇게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정원에서 멀어지고,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조경 공간만 남는다. 특히 아파트 단지 내 조경은 더 이상 공동체의 품이 아니다. 법적으로는 공공의 공간이라 해도, 담장과 비밀번호가 지키는 문 안에서 특정 주민들의 전유물이 된다. 마치 ‘내 집 앞 정원’처럼 일부 구역을 점유하고, 공공의 동선마저 무시한 채 동네안에서 아파트 단지 밖을 따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닫힌 조경은 외부의 낯선 이를 경계하게 만들고, 이웃간에도 신뢰와 연대를 약화시킨다.
이것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개발 초기부터 ‘고급화’와 ‘차별화’를 내세운 마케팅, 조경을 입주민의 자부심과 소유욕을 자극하는 도구로 삼아온 부동산 문화, 그리고 정체성을 잃어버린 도시 브랜딩이 근본 원인이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서로 닮은 도시형 유닛들, 콩글리시로 꾸며진 조잡한 단지명들은 도시의 문화적 깊이를 지워버리고, 트렌드와 이미지에 머무는 허상만 남긴다.무분별한 재개발은 도시의 이야기를 지운다. 오래된 마을의 굴곡과 담벼락, 나무 아래에 모였던 주민들의 풍경은 ‘비효율’이라는 말 아래 철거되고, 그 자리에 모델하우스에서 복제된 현실이 들어선다. 똑같은 평면, 똑같은 동 배치, 똑같은 외관. 창 너머의 풍경조차도 복제된 그림처럼 느껴진다. 효율은 높아졌을지 모르나, 그 안의 삶은 점점 평면적이고 단조로워진다.
그 결과 우리는 땅 위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더 이상 ‘어디에’ 살고 있다고 말하지 못한다. “서울에 어디어디에 살아”라는 말은 이제 너무나도 추상적이다. 그 안의 동네의 유기적인 형태의 골목길들과 그에 얽힌 기억들은 지워졌기 때문이다. 그 위에 복제된 아파트 단지들만 가득히 들어서고 있다.
조경은 본래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조경이 존재하는 공간은 항상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의 흔적이지 아닐까.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사람들이 얽히고 부대끼며, 바람이 사방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허락하는 그런 공간. 우리가 만든 지금의 조경은, 나무 그늘 아래 나란히 앉거나, 아이들이 학원을 가지않고 눈치 보지 않으며 뛰어놀 수 있는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공공을 잊고, 함께 돌보고 기억을 나눌 기회를 차단한 채, 조경은 오히려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건 아닐까 싶다.
도시는 누구를 위해 만들어지는가?
조경은 왜 존재하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구조가 정말 ‘삶’을 품을 수 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단순한 공간의 재배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우리 마음의 구조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되어야 한다. 삶의 방식이 공간에 스며들고, 그 공간이 다시 삶을 바꾼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조경은 다시 ‘살아 있는 곳’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비로소 아파트 단지들도 제각각의 동네의 특성을 살리고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조경은 단순히 식물을 심는 행위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의 변화를 느끼며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다. 진정한 회복은 굳은 경계 너머를 허용하는 데서 시작된다.
도시의 모서리에 여백을 두는 일은 결국, 우리 마음에 여백을 남기는 일이 아닐까.
